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14)
조선에 떨어진 한 알의 밀알, 토마스 선교사(Robert J. Thomas, 1839 ~ 1866)를 파송한 영국 웨일즈 하노버 교회
를 방문했다. 이 땅에 개신교 역사상 최초의 순교자인 토마스 선교사는 조선 선교의 꿈을 품고, 이 땅에 들어왔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27세에 순교했다. 토마스 선교사는 1840년 9월 7일 웨일즈 회중교회 목사의 두번째 아들로 태
어났고, 부친 로버트 토마스 목사는 매우 경건한 사람으로 웨일즈 하노버교회 담임으로 목회를 하다 1884년 2월 28
일 사임 후 10월 2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토마스 선교사는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런던대 뉴칼리지로 진학하여 1863년 졸업한뒤 이곳 예배당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설교도 했다. 그는 그때 런던 선교회 소속 선교사로 중국에 파송됐다. 그러나 3년 뒤 성도들은 토마스 선교사가
미지의 땅 조서에서 복음을 전하려다 평양 대동강변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끔찍한 소식을 접한다. 당시 분위기는 현재
교회 벽에 붙어 있는 토마스 선고사 순교패에 잘 나타나 있다.
토마스 선교사의 의로운 피가 이 땅에서 아직도 끓고 있으며, 양화진을 비롯해 6.25 남침으로 수 많은 목회자와 성도
들이 이 땅을 지켜내기 위해 장열히 순교한 그 피가 지금도 삼천리 금수강산에 메아리 치고 있다. 온 우주와 세상을 주
관하시는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품에 안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노버 교회는 현재 유재연 목사님께서 시무하고 계시며, 유 목사님의 초청으로 우리는 2박 3일 동안 하노버 교회에
서 현지 교인들을 초청하여 집회를 진행했다. 우리는 149년 전 대동강 순교의 빚을 재복음화로 갚겠다고 다짐하며,
그들을 정성껏 섬겼다. 우리와 함께 뜨겁게 찬양하고, 기도하며, 예배하는 그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뭉
클하다.
현재 이 교회는 매년 1,000여명의 한국교회 성도들이 찾지만 교회 상황은 열악하다. 예배당 옆에 30m 정도의 공간
이 있지만 담임목사 사무실, 식당, 친교실 등으로 사용하다 보니 아직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작은 바램이 있다면 많은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하노버 교회를 잊지 않고 기도하며, 그곳을 방문하여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 토마스 선교사의
희생과 사랑을 잊지 않고, 더 큰 사랑과 희생으로 보답할 수 있는 믿음의 동역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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